인천공항 '택숙자'를 아십니까

기름 아끼려 차안서 먹고 자며 손님 기다려

▶ 승용차 전용 침대는 식사 때 식탁으로 변한다. 택시 운전사들이 차 안에서 반찬통을 펼쳐놓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화보]


▶ 운전이 직업인 택시기사들에게 하체 운동은 필수다. 주차장 곳곳에 마련된 자전거들은 이를 위해 ‘택숙자’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택시기사들이 점심 식사를 한 뒤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택숙자…. 참 고단한 삶이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31일 오전 1시. 택시기사 황모(45)씨는 서울 시내에서의 고된 야간 영업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선다. 퇴근이자 출근이다. 대기표를 받기 위해 택시로 줄을 선다. 15번째다. 오전 6시 정도면 나오는 첫 손님을 태운 1번 택시가 나가고 족히 두어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번호다. 공항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면을 끝내고 잠시 눈을 붙인다. 택시 안에 설치한 간이 침상이 기울어져 몸이 자꾸만 옆으로 쏠린다. 얼마나 잤을까. 차 안 계기판의 시계가 오전 3시를 가리킨다. 대기표를 받을 시간이다.

오전 8시20분. 드디어 첫 손님이다. 서울시청까지 간다니 다행이다. 김포공항을 비롯해 근거리 손님이 걸리는 날이면 손님이 얄밉게 보이기까지 한다. 손님을 내려준 황씨는 호텔과 공항버스 정류장 주변을 기웃거린다. 공항 가는 손님을 태울 수 있을까 해서다. 그러나 오늘은 허탕이다. 빈 차로 돌아가려니 6400원의 공항고속도로 통행료가 너무 아깝다.

오전 11시쯤 공항으로 돌아온 황씨는 다시 번호표를 뽑는다. 또 8~9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반바지로 갈아입고 모자라는 잠을 청한다.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택시 안 온도는 40도가 넘는다. 창을 담요로 가리고 애써 잠을 청하지만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폭염에 시달리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일어난다.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길게 늘어선 택시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몸을 털고 일어나 트렁크에서 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여 먹은 뒤 화장실에서 밀린 빨래를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동료 운전기사와 바둑을 두거나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죽인다.

"먹고 살려니 별수 있나요. 그래도 시내에서의 '길빵(시내운행)'보다는 벌이가 되니 이 짓을 하는 겁니다. 운이 좋아 지방 손님을 한번 태우면 목돈 들고 집에 들어가죠." 황씨는 집에 못 들어간 지 닷새가 넘었다며 쓸쓸하게 웃는다.

오후 7시. 황씨는 두번째이자 마지막인 공항 손님을 태운다. 목적지인 서울 강남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30분. 손님을 내려주고 서울 시내에서 자정까지 '밤 장사'를 한다. 두차례 공항 손님으로는 사납금 내기도 버겁기 때문에 야간 시내 영업은 필수다. 0시20분. 황씨는 마지막 손님을 분당에 내려주고 다시 공항으로 출근한다.



글.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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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2 19:03 입력 / 2004.08.02 21:33 수정